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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한국사 속 돈 이야기

2화. 고려 첫 동전 ‘건원중보’, 왜 실패했나? – 조선 전 화폐 실험의 교훈

by 머니 메이트 2025. 7. 25.

2화. 고려 첫 동전 ‘건원중보’, 왜 실패했나? – 조선 전 화폐 실험의 교훈

💡 핵심 요약

고려는 건국 직후인 성종 2년(983년)에 우리 역사상 최초의 동전, ‘건원중보(乾元重寶)’를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화폐는 실질적인 유통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고려 사회가 화폐가 유통될 만한 경제 환경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쓸 곳도 없고 믿을 수도 없었던 돈이었던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건원중보가 실패한 진짜 이유와,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현대 재테크 인사이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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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조선 전엔 돈이 없었다고요? >이야기부터 시작하기!

2화. 고려 첫 동전 ‘건원중보’, 왜 실패했나? – 조선 전 화폐 실험의 교훈

 


 

1. 건원중보란 무엇인가?

🪙 고려가 만든 첫 주화

‘건원중보’는 고려 성종 때 처음 발행된 주조 화폐로, 한국 역사상 최초의 동전입니다.
재질은 구리였으며, 동그란 형태의 중심에 ‘乾元重寶’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 이름의 상징성

‘건원(乾元)’은 당나라의 연호에서 따온 것으로, 고려가 중국식 정치·경제 체제를 도입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즉, 화폐 발행 자체가 국가 개혁의 의지였던 셈입니다.

 


2. 왜 고려는 화폐를 만들었을까?

📈 농업사회에서 화폐사회로

고려는 농업 중심 사회였지만,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화하고 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화폐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송나라의 번영을 모범 삼아, 화폐를 활용한 세금 징수, 물자 유통, 상업 발전 등을 노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환경이 고려에는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건원중보는 왜 실패했을까?

① 돈을 써야 할 ‘시장’이 없었다

고려는 아직 시장경제가 형성되지 않은 사회였습니다. 대부분의 거래는 쌀, 베(삼베), 소금 등 실물 중심이었고,
화폐가 유통될 도시나 상업 네트워크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습니다.

💬 “돈은 만들었지만, 쓸 데가 없었다.”

 

② 중앙의 의욕, 지역의 무관심

건원중보는 중앙정부 주도로 강제 발행된 화폐였지만, 지방 호족이나 상인들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용성 높은 실물 교환 수단(쌀, 직물 등)을 더 신뢰했고,
화폐를 받아도 다시 사용할 수단이나 장소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외면되었습니다.

③ 신뢰할 수 없는 ‘구리돈’

화폐의 핵심은 ‘가치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지만 건원중보는 금이나 은이 아닌 구리로 만들어졌고,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가치가 낮고 신뢰할 수 없는 돈으로 여겨졌습니다.

📌 신뢰가 없으면, 화폐도 쓸모없다.

 


 

4. 고려 경제 구조상 ‘화폐 실험’은 시기상조였다

🧱 농업 중심 + 지방 분권 구조

고려는 전국적으로 농업 기반의 경제였고, 지방 호족 중심의 분권 체제였습니다.
경제 권력은 중앙보다 지방 세력에 있었고, 화폐 유통을 관리할 금융 시스템이나 조직도 전무했습니다.
지금처럼 중앙은행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통일적으로 회수·재유통할 시스템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건원중보는 사회와 경제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시행된 정책이었습니다.

 


💰 오늘의 재테크 인사이트

건원중보의 실패 사례는 오늘날의 금융·투자 제도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이나 투자 상품도,
신뢰와 유통 기반이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 예시
암호화폐, ETF, 스타트업 투자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자들이 해당 상품을 신뢰하지 않거나, 이를 활용할 시장과 생태계가 미비하면 실패 확률이 높아집니다.

 

한 줄 교훈:

좋은 제도도, 시장과 신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건원중보는 지금도 남아 있나요?
→ 네.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일부 실물이 보관돼 있습니다.
확인된 수량이 매우 적어, 실제 유통이 거의 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Q2. 고려 이후엔 어떤 화폐가 나왔나요?
→ 고려 후기로 갈수록 ‘해동통보’, ‘삼한통보’ 등의 화폐가 등장했고,
조선 시대에는 ‘상평통보’가 등장하며 화폐경제의 기반이 점차 마련되었습니다.

Q3. 고려에도 상인이 있었나요?
→ 있긴 했지만, 규모가 작고 대부분 절 주변 장터 중심이었습니다.
물물교환이 일반적이었고, 본격적인 상업경제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활성화되었습니다.

 

📚 더 궁금하다면 아래 글도 참고해보세요:
👉 [고려~조선 시대 화폐의 변천사: 건원중보부터 상평통보까지]
👉 [고려 상인들은 은병을 왜 숨겼을까?]


🔮다음 화 예고! 

3화 “조선판 위조지폐 사건 실화! – 저화를 복사한 범인의 정체는?”
조선은 세계 최초로 지폐인 ‘저화’를 발행했지만, 단 한 번의 위조 사건이 통화 시스템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3화에서는 위조 사건의 전말과 함께, 저화라는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화폐 신뢰의 본질을 파헤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