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 시대 화폐의 변천사: 건원중보부터 상평통보까지
오늘날 우리는 카드 한 장이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결제합니다.
하지만 불과 몇 백 년 전, 우리 조상들에게 '돈'은 단순한 거래 수단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가 얽힌 중요한 제도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의 건원중보부터 조선의 상평통보까지, 한국 화폐의 초기 변천사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화폐 이전, 사람들은 무엇으로 거래했을까?
고려 이전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일반 백성들은 화폐 없이도 다양한 방식으로 거래를 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교환 수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 쌀: 세금이나 품삯의 기준이 되었고, 가장 일반적인 실물 화폐였습니다.
- 베와 비단: 실용성과 희소성으로 인해 고가의 거래 수단으로 사용됐습니다.
- 소금, 철, 도자기: 지역 특산물이자 가치 저장 수단이었으며, 특히 소금은 생존과 직결돼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물물교환은 익숙한 방식이었지만 보관, 이동, 거래의 편의성에서 불리했습니다.
쌀 한 가마를 들고 시장에 나가는 것은 비효율적이었고, 베 한 필의 가치는 지역마다 달라 기준이 모호했습니다.
이러한 불편함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공통된 교환 수단, 즉 화폐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2. 고려의 첫 주화, 건원중보(乾元重寶)
📌 발행 시기: 고려 성종 3년(998년)
📌 형태: 청동제 동전, 중국 송나라 화폐를 모방
📌 의미: '건원'은 송나라 연호, '중보'는 귀한 돈이라는 뜻
건원중보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금속 화폐입니다.
당시 정부는 화폐를 통해 국가의 권위를 드러내고, 경제의 중심을 중앙으로 통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백성들은 화폐 사용에 익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쌀, 천, 물물교환을 더 신뢰했습니다.
이후 고려는 해동통보, 해동중보, 삼한통보 등 여러 종류의 동전을 주조했으나, 유통에 실패했습니다.
동전을 받아주는 시장이 거의 없었고, 화폐보다 쌀 한 톨이 낫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화폐는 외면받았습니다.
이는 화폐보다 실물 가치가 더 중요하던 시대적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3. 조선 전기의 화폐 실험과 좌절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국가 중심의 경제 제도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세종 시대에는 **저화(楮貨)**라는 종이돈을 발행하며 본격적인 화폐 실험에 나섭니다.
한지에 글자를 인쇄한 이 화폐는 오늘날의 지폐와 유사했지만, 위조가 너무 쉬웠고, 실물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백성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저화를 사용할 수 있는 상점이나 세금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실생활에서 거의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화는 실패로 끝났고, 다시 곡물, 천, 은 등의 실물 화폐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4. 조선 후기의 화폐 혁명, 상평통보(常平通寶)
📌 최초 발행: 인조 4년(1626년)
📌 전국 유통: 숙종 연간(1678년 이후)
📌 형태: 구리로 만든 둥근 동전, 가운데 네모난 구멍
상평통보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화폐로 자리잡았습니다.
초기에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사용되었지만, 숙종 때부터는 전국적으로 본격 유통되며 백성들의 일상 경제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장시(시장), 상업 도시, 세금 납부, 정부 조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었습니다.
상평통보는 지역에 따라 모양과 크기, 무게가 조금씩 달랐으며,
정부는 이를 정비하기 위해 화폐 주조 기준을 통일하고, 유통을 장려했습니다.
상평통보의 정착은 시장 경제의 확산, 도시 상업 발달, 민간 자본 축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만, 동전 품질 저하와 과도한 주조, 그리고 가짜 동전의 등장으로 인해
후기에는 화폐 가치 하락, 물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5. 화폐가 바꾼 세상
화폐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닙니다.
국가의 통치력, 백성의 경제 활동, 시대의 경제 구조를 모두 담고 있는 시대의 거울입니다.
- 화폐는 곧 국가의 신용을 상징
- 백성이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경제 주체로 참여했다는 증거
- 실패를 거듭한 끝에 상평통보의 정착은 조선 후기 경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마무리 요약
고려 | 건원중보 | 최초 주화, 유통 실패 |
고려 | 해동통보 외 | 다양한 실험적 화폐, 실생활 정착 실패 |
조선 | 저화 | 종이 화폐 시도, 위조로 실패 |
조선 | 상평통보 | 전국 유통 성공, 경제 활성화에 기여 |
고려의 건원중보가 씨앗이었다면, 조선의 상평통보는 열매였습니다.
돈이라는 작은 물체 하나가 시대를 움직이고 백성의 삶을 바꾼다는 사실은,
지금의 디지털 화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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